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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carlett_for Griet 2020. 12. 26.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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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문장 수집가


#리뷰(웅)신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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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생각 없이 한 말인데..'
말을 할 때는 생각 있어 말을 해야 한다.
생각의 존재 여부가, 말과 소리를 구분한다.
이렇듯, 생각은 몹시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인데

이는 말을 할 때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역으로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즉, 능동적 주체에서 피동적 객체로 지위가 격하됨을 나타내는,
사실상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일종의 경고의 말이다. 마치 단테의 신곡 지옥문에 새겨져 있는
'이곳에 들어온 자 희망은 버릴지어다'와 같은 느낌을 품고 있는 듯하다.
생각을 하는 일은 능동적인 행위이기에
주체의 능동성을 요하고 이는 곧 피곤함과 성가신 것으로서 여겨질 가능성을 내포한다.
생각하지 않고 산다면 물론, 편하기는 하겠지만, 사실 이게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의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편함의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생각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 세상에서, 생각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투입되는 노력의 값과 산출되는 결과의 기댓값을 비교하여 스스로 판단을 내린 결과라는 점에서 나름의 합리성이 깃든다.
그 계산의 정확성을 완전히 보장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 별생각 없이 사는 대로 생각함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하는 마음이다.
영향의 범위를 사회적으로 넓히기 전에, 개인의 영역 아래로 국한시키면, 결국에 선택은 개인의 몫인데, 물론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지만(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이는 본인의 마음이다. 마음 같아서는 현실을 자각하고 세상을 인식하고 주체성을 발하여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이 들지만, 다른 사람들도 꼭 그렇게 생각하라고 강요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실상, 강요는 제일 기피하는 거라서.
사회적으로 파급되는 영향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여기에 당위성과 일종의 상식 그리고 전체적인 고려 등이 포함되어 결정될 터인데.. 사실, 이 문단은 생각 밖의 영역이기에 이것으로 줄인다.
이렇게 미흡함에 방점을 찍는다.
어쨌든,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문장을 마주했을 때,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카누라떼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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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하다고, 즉 상대보다 앞서 있음에 높이 위치해 있음에 좋다고 뽐내며 건방 떨지 말라는 것인데.
사실, 유리한 위치에 섰을 때 드러내고 싶은 건 과시하고 싶은 건. 어찌 보면 유리한 위치로 가게끔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마치 명품을 사듯이,
자랑하고 싶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나, 이것이 교만이 된다면.. 상당히 피곤해질 것이다.
그 순간에는 뭐 좋겠지만, 나중에 본인의 지위의 상실이 발생하거나 혹은 이를 곱지 않게 보는 이들의 공격을 마주할 수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교만 때문에 본인의 유리를 잃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라는 말은 사실, 그 말은 듣는 대상을 위한 말이 아닐까.

불리한데 비굴하기까지 한다면야,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순간 비굴함을 품는 것은 어찌 봐야 할지,
실상, 비굴함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위해서 사용하게 된다면 애석하긴 하지만 버틸 수는 있으나, 비굴함 그 자체의 목적으로 쓰이게 된다면, 주체에게 굉장한 타격을 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불리한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비굴함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면, 생각이 많아지고 조용한 곳으로의 이동이 시급하다.

 



#칸트10

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보편적 입법 원리가 될 수 있게 행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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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도덕 형이상학 원론에서
정언명령 중 하나로 나오는 이 말은 무엇보다도 '격률'이라는 단어가 입가에 맴돌았다.
그의 문장들은 참 오랫동안 시선을 붙잡아두기는 하지만, 특히 마음을 쓰는 문장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너와 다른 사람을 결코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라.”
이 문장을 읽은 건 사실상 첫 만남이었다.
주위가 어둑한 새벽 아침에 육교 위에서 독서실로 향하던 그때가 생각이 나는 문장이다.
당시에는 무엇인가 해보겠다는 마음뿐이었고, 그렇기에 그 이외의 요소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마주한 이 사상가의 말을 꽤 오랫동안 읊조리곤 했다. 그의 지성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문장 하나하나 마다, 사상의 이어짐 속에서
잦은 감탄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동안 내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었던 이 사상가는, 이제는 다른 이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는 했지만, 그의 지위는 절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보편적 입법 원리가
될 수 있게 행위하라.
마지막 삶을 마치기 전, 와인 한잔을 음미한 후
'이것으로 좋다'라는 말과 함께 숨을 거둔,
쾨니히스베르크의 현자의 당위 섞인 말이
별빛 없는 밤하늘을 비추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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