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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에세이]_기억에 그리움이 더해질 때

문장 에세이

by Hi.Scarlett_for Griet 2020. 10. 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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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들은 시간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는다.

 

 

오늘의 문장은 한강의 '흰'에서 가져왔다.

 


기억.
어떤 기억들은 시간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는다. 헤져, 닳아 없어지기보다는 오히려 겹겹이 쌓여간다. 기억의 쌓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의식적 쌓임과 무의식적 쌓임이 그것이다. 의식적 쌓임에서 나는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생각을 한다. 나는 기억의 주인이요 능동적 주체다. 무의식적 쌓임에서 기억은 어떠한 계기도 없이 불현듯 생각이 난다. 규칙성 같은 건 없다. 문득문득, 드문드문. 나는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언제쯤이면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기억에 대해서 철저한 객체가 된다.

기억은 정말 성가신 녀석인 것 같다.
잊고 싶은 기은 잊히지 않고,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은 나도 모르게 잊곤 하니까. 기억은 정말 성가신 녀석이다.
시간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는 기억이 항상 후자이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그러길 바라는 건 나의 바람이자 욕심일 것이다.
나는 기억을 잊는 것에도 잊지 않는 것에도 소질이 없다. 그나마 자신 있는 건 생각하는 것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의 질은 보장 못하지만 양에서는 자신 있답니다'

기억에 대해 생각 한번 해볼까


너의 이름.

__________

잊고 싶은 기억을 Tablua Rasa(타불라 라사)로,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Palimpsest(팰림프세스트)로 이름 짓는다.

Tabula Rasa
: 백지상태
경험주의에서 생득적이라는 개념을 반대하면서, 인간은 태어날 때 백지(tabula rasa)와 같은 상태여서 모든 것은 그 이후에 학습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잊고 싶은 기은 백지로 만들고픈 마음뿐이다.
이전의 경험 같은 건 그냥 없었던 일로 하는 거지.
시험에 떨어졌던 일, 무례한 사람을 마주했던 일,
너의 연락을 기다리며 한 없이 걸었던 일,
술에 취해 비틀거렸던 일...
이런 것들 다 지우고 새로 시작하는 거야.

Palimpsest
:원래의 글 일부 또는 전체를 지우고 다시 쓴 고대 문서,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것
이미 글이 적혀있는 양피지에 글을 덧대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럼으로써 이전의 글과 현재의 글, 그리고 앞으로의 글이 겹쳐지는 과정에서 풍부한 의미가 생겨난다.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하는 기억은 추억이 되어 쌓여갑니다.
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했던 순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잊혀가겠죠. 석하게만 느껴집니다. 평생 기억하고 싶은 데 말이죠. 그래도 뭐.. 별 수 있나요? 다시 쌓기로 해요.
예매를 잘못해서 갑작스레 선택한 영화가 인생영화가 됐던 첫 데이트, 친구와 처음 갔던 맥주 바, 재수할 때 자주 갔었던 식당과 날 반겨주던 아주머니, 군대 동기들과 찍었던 사진..
그때 봤던 영화를 다시 꺼내 보고,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맥주 한잔하며 예전 일을 회상해도 보고, 그리움이 가득한 그 공간으로 찾아가도 봅니다. "저 왔어요".
이제 다 전역한 동기들과 만나 군대 얘기도 해봐요.
시간 가는 줄 모를 거예요.
_______

위에서 기억을, 잊고 싶은 기억과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으로 분류했다. 각각 Tablua Rasa(타불라 라사)Palimpsest(팰림프세스트)로 이름 짓고 후자를 추억이라고 했는데, 그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 그러면 전자의 경우는 뭐라고 부르며, 순서상 맞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데.. 맞다(글 정성껏 읽어줘서 고마워요).
그건 나중에 다뤄보기로 해요. 이번엔 추억에 대해서 이야기해봐요.


추억.
추억은 긍정적인 느낌이 있다. 호감이 가는 단어다. 인상이 좋다고나 할까?
추억은 수집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간직하고 싶고, 모으고 싶고.... 뭐 그런 느낌?!

추억의 사전적 의미는 아래와 같다.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이나 일.

이는 기억의 사전적 의미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추억은 뭔가 기억과는 다를 거라 생각했었는데.. 단어가 비슷비슷해 보인다면 주변 친구들을 찾아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누구이며, 반대로 친하지 않은 친구들은 누구인지 말이다. 전자는 유의어, 후자는 반의어라 할 수 있다.

 

'추억'의 유의어와 반의어

 

 

 

'기억'의 유의어와 반의어

 


추억이 기억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바로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기억에 그리움이 더해지면 추억이 된다. 도식화한다면
'기억+그리움=추억' 이쯤 되겠다.
기억과 추억의 차이는 그리움.. 결국 그리움이었다.


그리움.

신경숙 '깊은 슬픔'

 

블로그를 돌아다니가 우연히 보게 된 글이다. 단어 하나하나 조사 하나하나까지 간직하고 싶은 글이다. 이 글을 본 후로 수없이 아껴 읽었다. '지나온 곳으로는 어디로도 돌아가지 말자' 이 다짐에 마음을 다잡곤 했다.
정말 어디로도 돌아가지 말자고.

아래의 글은 수없이 했던 다짐의 한 파편이다.
___

‘문득 생각이 나’
잊으려고 노력했는데
당시에 듣던 노래도 함께 거닐던 거리도
모두 제자리에

매번 발길을 돌려보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아
그때의 내 모습
자꾸 눈에 들어와

그 노래 난 못 들어요
그곳으로 나는 못 가요
그대 생각보다도 그날의 내 모습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___

그때는 그랬다. 오로지 너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너만 있으면 되었고 너만이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너를, 어떻게 표현할 방법을 몰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너의 곁에 머물고 싶어서. 아무런 접점 없이 헤어진다는 게, 그냥 남이 된다는 게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눈치 없는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욕심을 부렸다.
나 너를 만나 참 많이 아팠다.
'이러다 죽겠는데..?' 생각했지만 그 아픔으로 살아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 상태를 유지하기엔, 계속 지속하기엔,
힘이 들어서, 내 속은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니어서 결국 그만하기로 다짐했다.
어쩔 수 없다는 말과,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로 합리화를 하며 그만두기로 했다.
이제 그만.

너와 함께 했던 순간들은 추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래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너무 가여워서.
'좋지도 않은 기억인데 추억이라니... 가당치도 않지'
모질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는 너 생각 말고 내 생각 좀 할게'
기억을 지울 수만 있다면, 백지로 돌릴 수만 있다면...
를 알기 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자고.

 


  • 그럼에도 문득 생각이 나는 건, 그리움 때문이었다.
    그리움 따윈 없는, 그냥 단순한 기억으로 치부해버리려 했지만 결국, 그리움 남았다.
    끝끝내 부정했던 그리움이 기억에 더해지자, 기억은 결국 추억이 되고 말았다.

    그리움을 지우지 못한 상태에서 기억을 지워버렸다면, 혼자 남은 그리움만 남았을 것이다.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그리워하기만 했을 것이다.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은 추억이었다.





깊은 슬픔 사진(https://m.blog.naver.com/ab550825/221923546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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