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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에세이]_편지

문장 에세이

by Hi.Scarlett_for Griet 2020. 10. 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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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 00 씨는 인내를 잘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요?

 

오늘의 문장은 지인의 '질문'에서 가져왔다.

 


문자 메시지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때는 4월이 끝나고 5월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역에서 내리니 노을이 지나간 하늘은 어두웠고, 가로등이 태양의 자리를 대신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지인과 연락하던 중에 질문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인내를 잘할 수 있을까요?'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아서 답을 하긴 했는데..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내가 인내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잘하지는 못하는데'
'이와 관련해서 말한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네..'
생각이 정돈된 곳은 결국 처음의 질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인내를 잘할 수 있을까?'

그후로 시간이 지나고 정돈된 생각들을 모아서 편지를 썼다. 저번에 했던 답이 미흡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질문에 대한 답을 편지에 담았다.

편지지는 워드 파일이었고 우표는 데이터였다.
아래의 글은 편지의 내용이다.

___

인내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딤.


1.
무엇인가를 참고 견딘다는 건,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여전히 낯서네요. 찾아오는 주기가 일정하지도 않아요. 이따금씩 오기도 하고 때론 너무 자주 오기도 해요. 그래도 매번 잊지 않고 찾아 오네요. 그럴 때마다 여전히 낯설고 적응이 안되고 어색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익숙해질 때가 온다면, 참고 견디는 것에 적응이 된다면 그것도 그렇게 반가울 것 같지는 않아요. 괴로운 일,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과 어려운 일,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내는 일이 일상이 된 느낌이 들어서 그런 걸까요?


가장 좋은 건 그럴 일이 생기지 않는 것 같아요. 무엇인가를 참고 견디는 일이 없는 온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해요. 하지만 너무 이상적인 상태라 현실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렵네요. 그렇다면 ‘생각’을 해보기로 해요. 사실 이런식으로 생각하는게 일종의 버릇.. 음..습관같은 거라서ㅎㅎ 저번에 인내에 대해서 짧은 시간에, 생각나는대로, 두서없이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커피 한잔 마시는 속도처럼 여유롭게 생각해 봤습니다:)


2.
인내는 방향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방향성이란, 현재 참고 견디는 상황이 나중에는 끝나리라는 ‘기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향성이라는 건, 기대라는 건 결국에는 ‘~위해’ 즉, 목표지향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하는 건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혹은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운동을 하는 건 체중감량을 위해 등으로 각각의 목표가 자리잡고 있어요. 인내라는 걸, 목표라는 일종의 결과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조금 수월할 것 같습니다.

인내를 과정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둘이 동등한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내보다는 과정의 크기가 더 크지 않을까요? 인내가 과정의 부분집합이 되는거죠. 과정안에 인내가 포함되는 그런 느낌이요. 과정에는 편하고 쉬운 과정도 있겠고 불편하고 어려운 과정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 중간에 위치하는 애매모호한 과정도 있겠지만 이건 잠시 모른척 하기로 해요. 인내가 속하는 과정은 불편하고 어려운, 때로는 힘든 과정으로 말 그대로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3.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내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사실 무엇인가를 참고 견디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되요. 물론 저도 그중에 하나이구요. 하지만 인내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과정이 없다면 그냥 그 상태가 아닐까 합니다. 제자리에서 멈춰있는 느낌으로요. 물론 그 자리가 가장 높은 곳이라면 굳이 앞으로 나설 필요는 없겠죠. 이때 그 자리는 굉장히 주관적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판단하기에 적당한 높이가 있으니까요. 동일한 높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미흡하게 느껴질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위태로울 수 있으니 결국엔 스스로가 판단해야 해요. 그리고 이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내에 앞서서 위에서 말씀드린 과정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이 과정에서 어떤 강요도 어느 누구의 떠밈도 없는 주체적 선택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에 인내를 감내하는 건 ‘나’ 이니까요. 누가 대신해주는 것도 아니고. 물론, 참고를 하기 위해서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말이에요. 항상 귀를 기울이고는 있지만 선택은 내가! 이런 느낌이죠:)


4.    
주체적으로 선택하지 못한 것 즉, 타인이나 외부의 그 어떤 것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된다면.. 이건 정말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아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네요. 되도록이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주체적으로 선택해서,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은(그게 운동이라거나, 책이라거나) 다 원만하냐? 그건 또 아닌 것 같습니다.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분명 그랬어요.

처음에 운동을 시작했던 것도, 책을 봤던 것도 누가 시켜서 한 건 아니었어요. 운동을 하는 것, 책을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예전에 가벼웠던 몸상태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뛸 수밖에 없었고 머리속에 지식을 집어넣기 위해서는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어요. 다른 좋은 방법이 있다면, 좀 더 편한게 있다면 미련없이 그것을 따랐을거에요. 하지만 아쉽게도 찾지못했어요. 그래서 그냥 했던 것 같아요. 


5.
물론, 처음에 힘들었어요. 이전에 안하던걸 하려니 어렵더라구요. 주위에 도움을 청했더라면 좀더 괜찮았을 것도 같은데 성격상 그러지 못하는 측면이 있어서, 그냥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근데 그때는 그냥 그랬어요.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책 한장을 넘기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때 알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던 건, 되고자하는 모습이 너무도 강렬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그 빛이 너무 밝다고나 할까요. 다른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건 특히 책을 읽을 때 심했었죠. 다른 일은 미뤄두고 오직 그것만 했으니까요. 초창기에는 책을 보지 않으면 불안한 느낌이 들어었어요. 이건 운동도 마찬가지였죠. 하루, 운동을 빼먹으면 되게 불안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에 할때는 밀린 할당량을 채우듯 평소보다 더 많이 하고 그랬어요.


6.
이러한 과정을 견디는 게, 참아 내는게 쉽지는 않았어요. 인내력을 필요로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때는 당장의 힘듦보다는 이걸 하지 않았을 때 오는 불안감과 이거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다는 생각으로 그만둘 수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인내력을 길렀다기 보다는 오히려 인내력 기름을 당했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몰라요.

얼마나 운동을 해야 몸 상태가 예전으로 돌아갈지, 책을 몇권을 봐야 지식이 늘지 알수 없었어요. 굉장히 추상적이었고 너무 두리뭉술했죠. 그래서 더 속도를 올렸나봐요. 명확한 수치를 모르니까 현재 어느 단계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달리는 것뿐. 발을 내딛는 것 밖에는 없더라구요.


7.
이 상태가 얼마나 지났을까요? 어느 순간부터 인지는 몰라도 편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하루, 이틀쯤 운동하지 않더라도 ‘다음에 하면 되니까’ , ‘책 볼 때가 있다면 잠시 쉴 때도 있고’, ‘보던 책이 마음에 안 들면 덮어두고 다른 책도 보고’. 예전에는 한 번 책을 펴면 무조건 끝까지 봤었거든요. 저자소개부터 머리말까지 쓰여있는 글자는 다 읽었어요. 그래야 책을 다 읽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약간의 강박증 같은게 있었나봐요. 마음에 안 들면 덮어두고 다른 걸 보면 되는 데도,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여유를 가지려고 해요. 그래도 책을 보는 거라든지 운동을 하는 거라는지 예전이랑 빈도는 큰 차이가 없지만 말이에요. 여전히 책상위에는 책갈피가 꽂혀있는 책이 있고 1주일에 6번은 뛴답니다. 그래도 예전과는 다르게 과감히 책을 덮기도 하고 운동을 쉴때도 있어요. 잠시 쉬어가는 거죠.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기대서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해요.


8.
이렇게 책을 보게 된지도 올해로 벌써 6년차가 되었습니다. 운동을 시작한지는 3년 차가 되었네요. 이 과정 속에서 여유를 찾기까지 정말 오래걸렸어요. 비록 현재 느끼는 상태가 완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마음에 듭니다. 정말로요 :)

책이나 운동뿐만 아니라 점점 인내해야할 것들이 늘어나겠죠. 그때가 된다면 또 우왕자왕거릴지 몰라요. 어찌다뤄야 할지 몰라 속도를 급격히 높히기도 할 것이며 때로는 주저 앉기도 하겠죠. 벌써 그 모습이 눈에 훤하네요.  

하지만 머지 않아 그 혼란 속에서 여유를 찾아낼 겁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기대서 숨을 고르는 시간을 말이에요. 여유를 찾아 헤매다가 정 없으면 하나 새로 만들기로 해요. 이렇게 된다면 괜찮아요. 그 인내의 시간이 그리 힘겹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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