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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에세이]_초대장

문장 에세이

by Hi.Scarlett_for Griet 2020. 10. 2.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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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무더위가 한창인 날에 애프터 뮤지엄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미술에 대해서 사람들과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동안 내게 미술은 책 속의 이야기였는데..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할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정말 멋진 일이야'

 

7월 25일 주제는 '대지미술'이었다.

 


미술작품은 꼭 미술관에서 봐야 할까?

 

오늘의 문장은 애프터 뮤지엄의 '아트카드'에서 가져왔다.

 


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오리엔테이션 식으로 자료가 제공되었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었다.
미술작품은 꼭 미술관에서 봐야 할까?
이 물음을 던져준 것은 바로 '대지미술'이다.


대지 미술.
대지 미술이란: 미니멀 아트(minimal art)의 영향 아래 ‘물질’로서의 예술을 부정하려는 경향과 반문명적인 문화현상이 뒤섞여 생겨난 미술 경향. 즉, 암석, 토양, 눈 등을 소재로 하여 대지를 미술 작품으로 삼는 예술을 뜻한다.
이제 미술은 미술관이 아니라 밖에서 즐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해방'의 느낌은 준다.

 

기존에는 미술을 미술관에서 즐겼다면
대지미술은 미술을 밖에서도 즐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밖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미술을 즐길 수 있다.

 


대표작가로는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이 있다.

 

Robert Smithson, Spiral Jetty in 2004, Rozel Point, Great Salt Lake, Utah.

 

______

대지미술은 미술이 미술관뿐만 아니라 자연에도 있음을 알려주었다. 마치 자연으로 초대장을 받을 것만 같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미술이 자연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즐길 수 있다면, 곧 일상이 미술이 된다면 어떨까?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당신을 일상으로 초대합니다'

초대장.

모나리자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 넣은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마르셀 뒤샹. ‘이것이 진정 예술인가?’라는 물음을 하게끔 한 당사자라 할 수 있다. 모나리자에 수염을 그려 넣을 때의 손놀림은, 소변기에 ‘R. Mutt’라는 서명을 할 때와 같았을지, 의문이 들지만 미소 짓는 입과 진지한 눈은 여전했으리라 생각한다.

 

L.H.O.O.Q 수염난 모나리자, 샘

 

그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채색하거나 그릴 수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릇 예술가란 속세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기가 아니라면 아무 소용없는 심상을 표현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뒤샹의 해석에 밑줄을 긋는다. 윌 곰퍼츠는 뒤샹이 300년 전 과학적 발견으로 지적 혁명을 가능케 한 갈릴레이처럼, 암흑 같은 ‘중세 시대’라는 벙커에 갇혀 있던 예술을 해방시켰다는 관점에 동의한다고 그의 책에서 밝혔다.

예술 해방의 선봉대에 선 뒤샹. 그가 꼭 잡고 있던 바통은 여럿을 거쳐 대지미술에게 바통터치가 되었다. 이를 이어받은 대지미술은 미술을 미술관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또한 미술에 붙어있던 가격표를 떼고 상업성과 멀어졌다. 대지 미술에 대한 첫인상은 해방감과 자연이었다. 사방이 벽으로 막힌 건물 속이 아니라 탁 트인 공간에서, 자연을 재료로 만든 미술 작품들. 천연 재료를 사용하여 피부에 자극이 덜한 화장품처럼, 거부감이 덜했다.

작품의 ‘영원한 보존’ 보다는 ‘자연스러운 파괴’를 중시한 대지 미술. 영원성보다는 자연스러움으로 번역되는 일시성에 무게를 둔 듯하다. 나는 욕심쟁이라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아보려 한다. 영원함과 자연스러움이 공존하는 그곳은 어디가 될까? 동화 속 무지개 너머의 그곳이나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파란 나라는 아닐 것이다.

그곳은 바로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무한히 반복되는 ‘영원성’과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는 ‘자연스러움’이 있는 ‘일상’이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 말이다. 뒤샹이 레디메이드(Ready-made) 라면 일상의 미술은 니얼 바이(Nearby)라 할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곁에’ 있는 미술이다.

아침에 졸린 눈으로 보이는 흐릿한 천장 무늬, 커피 머신에서 추출되는 커피, 아파트 현관 앞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 횡단보도와 신호등, 말차 라떼의 그라데이션, 물끄러미 바라본 하늘, 와인 빛의 핸드폰 뒷면, 잎이 무성한 카페 옆 나무, 그 아래로 흐르는 실개천, 하이볼 잔에 걸려 있는 레몬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이 미술이 된다. 매번 같지만 매번 다른 느낌.

일상으로 한 걸음 다가가, 내가 아니라면 아무 소용없는 심상들을 ‘표현’해 의미부여를 하고, 그 작업이 끝나면 설명서를 갖게 된다. 그것들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이때 ‘표현’은 눈 맞춤을 의미한다. 흘깃, 스쳐지나도 좋다. 살며시 물끄러미 보는 것도,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보는 것도, 시간을 들여 지긋이 보는 것도 좋다. 보는 방법은 백지수표가 된다. 정해진 건 없다.

어떤 방법이든 간에 눈 맞춤을 포함한다면 그것으로 좋다. 이때의 눈 맞춤은 뒤샹의 서명과도 같다.


이렇게 일상은 미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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