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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에세이]_셀프 낯섦

문장 에세이

by Hi.Scarlett_for Griet 2020. 9. 3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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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곳에서 제가 늘 이방인이고 여러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늘의 문장은 카뮈의 '페스트'에서 가져왔다.

 


가끔씩 스스로가 이방인이 된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에게 가장 익숙한 건 바로, 나인데 말이다.
이런 상황을 나는 셀프 낯섦이라 부른다.

셀프 낯섦
정의: 스스로가 낯설어지는 상태.
발생조건: 여긴 어디? 너는 누구?

-여긴 어디?
낯선 장소에 갔을 때다.
처음 가보는 동네. 낯선 전철역. 익숙하지 않은 거리의 풍경.
마치 다른 나라에 온듯하다.

-너는 누구?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다.
처음 만난 상대. 이름에 성을 꼭 붙이는 사람. 같이 있으면 어색한 사람. 헤어짐이 반가운 사람.
'낯설다, 정말'

____

혼자라도 익숙한 곳을 가거나, 모르는 곳이라도 친구와 함께 간다면 셀프 낯섦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낯선 곳을 갈 일은 늘 생기고 그럴 때마다 나는 대부분 혼자다.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은 회색 빛을 띠는 강당에서 진행되었다. 처음이라 찾는데 꽤 고생을 했지만 늦지 않게 도착했다. 이럴 줄 알고 집에서 여유 있게 출발했다.
'첫날인데 늦을 순 없지'
강당을 가득 매운 수많은 사람들. 1학년이라는 공통점은 있었지만 아는 사람 한 명 없었다.
'여기가 앞으로 내가 다닐 대학교구나'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들 어정쩡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는 나처럼.
곳에모두가 이방인이었다.
큰 강당은 낯섦으로 가득 찼다.

군대에 있을 때, 부모님과 전화를 하던 도중 이사를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이사가! 원래 있던 집이랑 그렇게 멀지는 않아. 차 타고 한... 30분 정도?"
"나 휴가 나갈 때, 이제 어디로 가?"
"어디긴 어디야? 집으로 와야지. 나오면 연락해. 위치 보내줄게"

군대에 있을 때 집이 이사를 간 사실을 몰라, 휴가 나왔을 때 한 참을 헤맸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내 얘기가 될 뻔했다. '이런 이런 그럴 순 없지, 소중한 휴가를 집 찾는데 쓸 수는 없어'
휴가 전날, 전화로 확인하고 당일에는 스마트폰으로 위치까지 받았다.
휴가를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 낯설었다.
'이건 뭐, 군부대가 더 집 같잖아..?'
평소에 타지도 않던 버스를 타고 낯선 정류장에 내렸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확인해가며 집을 찾아갔다. '여기가 맞나?' 의문으로 가득 찬 발걸음은 그렇게 가볍지 만은 않았다. 다행히 헤매지 않고 집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 휑한 방 안에 앉아 있으니 남의 집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방도 언젠가 익숙해지겠지'

스스로가 낯설어지는 '셀프 낯섦'.
솔직히 별로다. 달갑지 않은 느낌이다.

익숙하면 편안함이 있다. 별다른 신경 쓸 것도 없고,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면 되니까.. 단점이 있다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는 거? 반면 낯설면 지루하지는 않다. 모든 것이 새로운 상황이기에 시간도 잘 갈 것이다. 하지만 온 신경이 곤두서 있겠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까, 예민한 상태를 유지하느라 진이 빠질 것이다.

나는 익숙한 게 좋다.
갔던 가게를 계속 가고,
먹던 메뉴를 계속 먹고,
만났던 사람을 계속 만난다.

편안함이 좋기 때문이다.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가끔은 지루하기도 하지만, 편한 게 좋다.
'낯선 상황에 허둥대는 것보다는 지루함에 잠깐 조는 게 낫'
이러다 보니 나의 생활 반경은 굉장히 좁다.
새로움을 완전히 기피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것들을 접하면,
못 보던 것들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많나고 하면서 관계가 넓어지겠지...
이런 생각을 하기는 한다. 다만, 계속 미룰 뿐이다.
'다음에..'

__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동아리에 가입했다. 독서 동아리였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책을 쓰는 '책 쓰기 프로젝트'도 참여했다.
나와는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던 전시팀에 들어가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물론, 다 초면이다.

낯설다. 낯설다. 낯설다.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컸다.
미루려고 생각해봤지만, 그냥 하고 싶으니까.

최근 식당 주방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낯설다.

돈이 필요했다.
미룬다고 해서 돈이 생기지는 않는다.

혼자 방안에만 있을 게 아니라면, 결국은 낯설어진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그와 함께 벌어지는 새로운 일들.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익숙해지기만 하면 돼'

갔던 곳을 계속 가고, 한 번 만났던 사람과 또 만나고, 처음 했던 일을 다시 한다. 그러다 보면 익숙한 간판이 보인다. 낯익은 거리가 생긴다. 어색하던 사이에서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일을 하며 콧노래도 부른다.

익숙해지면 된다. 그러다 보면 점점 익숙한 것들이 늘어난다. 마치 내 방안이 커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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