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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에세이]_웨하스

문장 에세이

by Hi.Scarlett_for Griet 2020. 9. 2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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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오늘의 문장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가져왔다.

 


"힘 내"
상대방에 대한 격려와 위로를 담은 이 말. 예전부터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 사실 상, 힘이 났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에겐 그다지 반갑지 않은 말이다.
'힘을 내라고 하는데.. 여기서 더 이상 어떻게 힘을 내라는 거야?'
힘을 내라고 다그치는 것만 같다. 마치 힘을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힘내라는 말은 이제 그만하고 힘을 좀 주면 안 될까?'

진심이 담긴 응원은 언제나 내게 힘을 준다. 때로는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지 눈물이 날 것만 같은데..'

웨하스를 면 괜히 마음이 뭉클해진다.
2014년. 내게 있어 최고의 응원은 웨하스였다.


나의 스무 살은 남들과 달랐다.
2014년. 친구들은 대학 새내기가 되었지만 나는 재수생이 되었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닌 어중간한 신분.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지만, 굳이 소속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재수생이 뭐 어때서?'
그렇기 때문에 딱히 슬프다거나 부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많이 외로웠다. 새벽에 나와서 밤늦게 들어가는 것보다,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 오가는 것보다, 말 상대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정말 지치게 했다.

공부하겠다고,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노량진으로 갔다.
첫날, 큰 가방을 짊어지고 육교 위에서 본 하늘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은 육교가 없어졌지만 그때의 하늘은 요즘에도 가끔씩 마주하곤 한다. 괜히 반운 느낌이 든다.
근처의 학원을 다니기는 했지만, 주로 독서실에 있었다.
가장 조용한 곳들 중 하나인 독서실은 점점 소란스러워져 갔다. 갈수록 신경이 예민해진 탓이다.
삼시 세끼를 밖에서 해결해야 됐기에,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두 끼는 도시락을 먹고, 한 끼는 사 먹고.
다 사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을까 봐 그랬던 건데.. 재수하면서 15kg 이상 찐 걸 보니 딱히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독서실에는 밥을 먹는 공간이 있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미니 냉장고에 전자레인지까지 구비되어 있는 본격적인 공간이었다. 개인적으로 그 공간을 좋아했는데, 독서실에서 유일하게 창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밖을 볼 수 있는 곳이 거기밖에 없어서, 반찬 하나 남겨놓고 밖을 쳐다본 적도 많다. '반찬 하나 있으니 앉아있어도 되겠지? 남은 자리도 있으니까'
혼자 밥 먹는 게 일상이었다.

9월 모의평가 당일. 두 달도 채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스스로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것 봐. 그동안 열심히 했잖아. 수능 당일에는 오늘보다 더 잘할 거야.'
오전 시험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시험은 다 끝나지 않았지만, 또한 결과를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느낌이라는 게 있다. '이거 힘들겠는데..?'
스스로에게 보여줄 게 없었다.
'이걸 어떻게 보여주란 말이야. 무슨 낯짝으로..'
지원해주는 가족보다 먼저, 나한테 너무 미안했다.
'열심히 한 거 다 아는데, 결과가 고작 이거라니..'
'나 어떻게 해야 되지?'

누구한테 말할 사람도 없어서 속으로 삼켰다. 마음을 다 잡아야 했다. 아직 오후 시험이 남아있으니까.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머릿속은 '나 어떡하지?'로 가득 찼다.
세상의 모든 고민과 걱정을 머리에 인채 독서실로 돌아왔다.
이 와중에도 밥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밥알은 마치 모래알 같았다. 꺼끌꺼글했지만 천천히 삼켰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안 나게 하기 위해선 칼로리가 필요했으니까. 그렇게 혼자 밥을 먹고 있을 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이거 먹어요."

파란색 포장의 웨하스였다.
"오늘 시험 보죠? 사실, 동생도 재수하는 중이라서.. 쉬는 시간에 배고프면 먹어요"
처음이었다. 독서실에서 말을 걸어온 건.
곧이어 '나한테 왜 주는 거지? 표정이 그렇게 안 좋았나?' 이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너무 고마워서.. 고맙다는 말도 잘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고마워서.
마음속에 걱정 대신 고마움이 가득 찼다. 그렇게 약간은 얼떨떨한 상태로 오후 시험을 봤다.

선물 받은 웨하스는 바로 먹지 않고, 독서실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당분간 여기다 놔야지.'
그걸 보고 있으면 왠지 힘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하다 물끄러미 올려다 본적도 많다.
선물에 대한 답례로 '어떤 걸 줄까?' 하는 고민 끝에 칙촉을 샀다. 좋아하길 바라며.
그후로 밥먹으러 갈 때면 칙족을챙겨서 갔다. 언제 마주칠지 모르니까. 그런지 3일쯤 지났을까? 한적한 시간대에 마주치게 되었다.

저기..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부른 채 칙촉을 건넸다.
"이거 드세요"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타이밍이 안 좋았는지 그후로 마주친 적은 없었고, 수능이 코앞이라 나는 나대로 정신이 없었다.
수능시험이 끝나자 그렇게 독서실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사람이다.
나이는 몇살인지 좋아하는 건 뭔지 어떤일을 하고 싶은지..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
아는 거라곤 그때의 날 바라보던 표정과 목소리뿐이었는데.. 이젠 그마져도 확신할 수 없다.
그때 정말 고마웠다고, 힘이 됐다고 말하고 싶은데 기대할 수 있는 건 우연뿐이다.

20살의 나에 비해 지금의 나는 참 많이도 변했다.
오랜만에 노량진을 찾아 독서실로가보니 스터디 카페로 변해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건
웨하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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